기장학연구소

지역사와 전통문화 연구의 산실

연구성과
  • 조선중기 이후 기장현관게문헌집성
    기장문화원장 김진옥
    2001-01-20
    기장문화원에서는 기장현의 뿌리찾기 운동의 일환으로 선조들의 역사적 기록을 찾기 위하여 많은 노력을 경주해 왔다. 선조들이 물려준 정신적 유산이야말로 우리의 나아갈 길을 제시한여 주는 가장 귀중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선인들의 유산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유구한 역사의 산물이기도 하다. 특히, 물질문명만이 강조되고 이른바 "신지식인"이라 하여 경제적인 면만을 강조하고 추구하는 요즈음 들어 우리 조상들이 남긴 정신적 유산을 되살려 우리 고장의 가치관을 세우는 일은 매우 의미있는 일이라 하겠다. 그리하여 우리 문화원에서는 과거 우리 조상들의 발자취를 찾기 시작하여 1998년부터 자료집을 간행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모든 자료들이 한문으로 되어 있어 독자들의 편의를 위해 원문과 함께 번역하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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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장문화원장 김진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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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후기 기장현의 각사등록초
    기장문화원장 김진옥
    1999-10-30
    본서는 조선왕조 ....의 공식적인 기록문서를 모은 것이므로, 기장 지역의 역사적 상황을 객관적으로 파악하는 데 그 가치가 충분하다고 생각된다...중략...본서는 가급적이면 현대문에 가깝게 번역하려고 노력하였다. 그러나 부분적으로는 古語의 표현 방법을 그대로 살려둔 곳도 있다. 이는 현대문으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생겨나는 오류를 막기 위한 부득이한 것이었다. 번역하는 과정에서 오는 오류를 최대한 줄이려고 노력하였으나, 학문은 날로 발전하는 것이므로, 후세에 다른 이가 더욱 연구하여 보다 좋은 번역문을 만들어 내었으면 하는 기대에서 원문을 책의 뒤쪽에 붙였다....생략....

    1999년 10월 1일 기장문화원장 김진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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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장의 한시문화
    기장문화원
    1998-12-30
    우리나라의 글은 글자체가 한문에서 기인되었으며 이로인하여 이두문이 생겨났고 이두문이 변하여서 수백여년 지나는 동안에 발전에 발전을 거듭하여서 조선 제사대 세종임금은 탁월하신 선각자로서 이두문을 고쳐서 언문을 만들어서 수정하고 발전하여서 지금 세상에 이르게 되었다.
    이곳 기장고을은 우리나라의 끝이며 바닷가 편벽된 마을이다. 물자도 풍족치 못하고 이재도 부족하고 또한 글도 부족한데 문화원의 문을 연지도 얼마되지 않아서 고전의 발굴도 알지못하고 미읍하다. 김진옥 문화원장께서는 탁월하신 성품으로 애향심을 적극발휘하여서 많은 문장을 접하시니 앞길이 환하게 기반을 닦아놓았다. 그 남은 힘을 모아서 지금에 한시 백일장을 개최하여서 제1부와 제2부에는 전국의 글선비님들의 육백여수의 옥같은 글을 보내와서 한권의 책을 만들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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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곳 기장고을은 우리나라의 끝이며 바닷가 편벽된 마을이다. 물자도 풍족치 못하고 이재도 부족하고 또한 글도 부족한데 문화원의 문을 연지도 얼마되지 않아서 고전의 발굴도 알지못하고 미읍하다. 김진옥 문화원장께서는 탁월하신 성품으로 애향심을 적극발휘하여서 많은 문장을 접하시니 앞길이 환하게 기반을 닦아놓았다. 그 남은 힘을 모아서 지금에 한시 백일장을 개최하여서 제1부와 제2부에는 전국의 글선비님들의 육백여수의 옥같은 글을 보내와서 한권의 책을 만들어서....중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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